인천도시산업선교회 ISSUE · 2026-08

2026년 8월 소식

템플릿

연대)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2026.08.20

인천NCC 2회기 1차 임원회의

8월 20일 오전, 연수구 선학동 레오커피에서 2회기 첫 임원회의로 모였습니다. 김인정 회장, 임병구 총무, 김종철 회계, 하성웅 협동총무가 함께했습니다.

먼저 재정과 회칙을 살폈습니다. 회비와 후원금 항목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회원들께 회비를 청하기에 앞서 임원이 먼저 솔선수범하기로 했습니다.

임원회 운영 방식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회장과 총무에게 일이 몰리던 방식에서 벗어나, 각 임원이 맡은 사업을 직접 나누고 보고하는 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서로 믿고 서로 채워 주는 임원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9월 4일(금) 오전 10시 30분에 열릴 1차 실행위원회 안건도 정리했습니다. 총회 회의록 채택, 5개 위원회 위원장 선임, 성탄절 「고난받는 이웃과 함께하는 예배」의 대상과 방식, 달력 제작 등 사업을 점검합니다.

9월 3일 고공농성 중인 택시노동자 고영기 님과 함께하는 기도회, 8월 24일·31일 기후정의 아카데미도 함께 준비합니다. 전국 단위로 제안된 택시노동자 지원 대책위에는 개신교 대책위를 구성해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바쁜 걸음들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나누어 지면 가벼워집니다. 회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고공농성 택시노동자 고영기와 함께하는 기도회 2026.08.18

[고공농성 택시노동자 고영기와 함께하는 현장 기도회🙏]

택시노동자들의 간절한 투쟁 끝에 ‘사납금제’가 폐지된 지 7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불합리한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10~12시간을 일해도 고작 3~4시간 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간주근로시간제’. 노동자에게 공짜 노동과 과로를 강요하는 이 착취의 구조를 끝내고, ‘일한 만큼 정당하게 월급을 받는 삶’을 위해 노동자가 다시 하늘에 올랐습니다.

20미터 높이의 통신탑 위,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위태로운 공간에서 고영기 동지가 140일 넘게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고영기 동지가 무사히 땅을 밟고 건강하게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주세요!

📍일시: 2026년 9월 3일(목) 저녁 7시
📍장소: 인천 남동구 길병원사거리 택시 고공농성장 앞
📍모금계좌: 신한은행 100-017-268518 (재단 영등포산업선교회)

📍함께하는 단체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 영등포산업선교회 /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 인천도시산업선교회 /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 한국교회 인권센터 / NCCK 교회와사회위원회

골목아키비스트 워크숍 2026.08.15

골목아키비스트] 8월 워크숍 현장스케치 2

골목아키비스트 워크숍 2026.08.15

골목아키비스트] 8월 워크숍 현장스케치 1

골목아키비스트 워크숍 2026.08.15

[골목아키비스트] 8월 워크숍 후기

우리가 걸어온 골목, 우리가 만들 이야기

지난 8월 15일 토요일 오전, 부평 깡시장 고객쉼터 '아모로'에서 「골목아키비스트」 8월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5월 현덕의 '남생이' 길, 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지난 석 달 동안 시민들과 함께 인천의 골목을 걸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그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기록했는지 서로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 함께한 시간

강사로 비폭력평화물결의 박수인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참가자들은 둘러앉아 각자를 소개하고, 지난 탐방에서 남은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습니다.

· 각자 소개와 그동안의 느낌 나눔
· 지난 3개월 골목아키비스트 프로그램에 대한 감상과 평가
· 인천의 문화·역사·노동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 오는 10월, 프로그램의 마무리가 될 '제물포 문학의 밤' 아이디어 기획

■ 남은 이야기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인천시민'이라는 이름 하나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자기가 살아온 골목을 기억하려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남겨 두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 앞으로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이번 워크숍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남은 두 번의 탐방과 10월 '제물포 문학의 밤'을 시민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장으로 만들어가려 합니다.

골목을 걷고 기억하는 일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026년 자료아카이빙위원회 2026.08.11

자료아카이빙위원회 '짜장학당' 4차 모임

2026년 8월 11일(화) 오전 10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지하 1층

자료아카이빙위원회 짜장학당 네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위원별 연구 주제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김희주 위원은 만석동과 동일방직을 중심으로 한 생활사 연구 구상을, 이희환 위원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아카이빙 구상안'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논의는 디지털 시스템 구축이었습니다. 자료 정리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보다 시스템을 먼저 만들고, 자료를 검토해 가며 분류 체계를 잡아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삭아가는 카세트테이프의 디지털화도 더 늦기 전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에 보관된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 자료의 활용 방안, 내년 공모사업 준비, 그리고 재개발로 사라질 화수·화평 지역의 기록 문제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골목이 사라지기 전에 남겨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다음 모임은 9월 7일(월) 오전 10시 30분입니다.

시민X9월 조세희 <난쏘공> 길 2026.08.10

시민X9월 조세희<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길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 소설 속 공간을 걷습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속 '은강'은 인천이었습니다.
영수가 다니던 자동차 공장, 영희가 다니던 방직 공장, 그리고 그들이 몸을 누이던 판잣집 골목.
소설 속 지명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지금도 인천에 남아 있습니다.

9월 골목 아키비스트는 인천역에서 화수동 일꾼교회까지,
『난쏘공』의 인물들이 걸었을 법한 길을 따라 걷습니다.
근대 철도가 처음 닿은 자리에서 출발해, 여성 노동자들의 방직 공장과 부두,
아이들의 공부방과 노동자들의 교회를 지나며
문학이 기록한 노동과, 노동이 만든 도시를 함께 읽습니다.

시민X노동역사문학기행 〈골목 아키비스트〉 9월
난쏘공 길 — 작가 조세희

장소 : 인천 제물포구 일대 * 인천역 집결
일시 : 2026. 9. 5.(토) 10:00 – 13:00
강사 : 소설가 김경은
모집 : 선착순 20명
신청 : https://forms.gle/oB3gQd9LWa2nB4SF7
코스 :
인천역 – 근대의 상징 경인철도, 작가의 작품세계 소개
동일방직 – 영희가 다니던 은강방직
판유리공장, 만석부두
괭이부리말 아이들 공부방
두산인프라코어 - 영수가 다니던 자동차회사
수문통 일대 – 공작창 터
일꾼교회 - 영희가 다니던 교회

주최 : 사단법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 :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에큐메니칼 세미나 <누가 전환의 짐을 지고 있는가?> 2026.08.06

기후 위기 시대, 산업 전환의 짐을 '약자'에게 지우지 않으려면

교회협 에큐메니컬 세미나 
"정의로운 전환,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자리 하나를 다른 일자리로 맞바꾸는 문제 아냐"

출처 : 뉴스앤조이(https://www.newsnjoy.or.kr)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400649

에큐메니칼 세미나 <누가 전환의 짐을 지고 있는가?> 2026.08.05

“전환의 짐,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홀로 져서는 안 된다”

NCCK 교사위원회, ‘지역과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 세미나 열고
기후 위기 시대 교회의 역할 모색

https://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38

연대사업 (종교계 및 시민사회) 2026.08.04

<민주주의를 위한 기도> 개막식

일시: 2026년 8월 3일(월), 오후 3시 장소: 민주화운동기념관 E(교육동) 1층 다목적홀

https://youtu.be/ufy_z3hKT1Y?si=YxXnOk8AxaAZ0jRJ

에큐메니칼 세미나 <누가 전환의 짐을 지고 있는가?> 2026.08.04

에큐메니칼 세미나 현장 스케치

2026년 자료아카이빙위원회 2026.07.29

자료아카이빙위원회 짜장학당 3차 모임

일시 2026년 7월 28일(화) 오전 10시
장소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지하 1층
참가 나지현, 김희주, 이의환, 이성재, 하성웅

7월 28일 화요일 오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지하 1층에 다섯 사람이 모였습니다. 산선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고 남길 것인가를 두고 이어온 모임의 한 자리였습니다.

먼저 얼마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다녀온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래전 그곳으로 옮겨간 산선 자료들이 지금 어떤 상태로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온 자리였고, 앞으로 산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을 이어가려면 재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습니다. 여러 지원사업을 시기별로 훑어보며 무엇을 언제 준비할지 나눠 맡았습니다. 자료를 보관하는 일 자체를 지원해주는 곳은 좀처럼 없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가 가장 길어진 대목은 결국 "우리는 무엇을 하려는가"였습니다. 하인천이라는 자리, 항만과 노동자들 곁에 있었던 시간, 노동자 교육의 산실이었던 역할, 그리고 기독교와 만나며 만들어낸 것들. 산선만이 가진 자산을 하나씩 짚어보며 앞으로의 모습을 함께 그려봤습니다.

마지막으로 각자 파고들 주제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모임부터는 매번 한 사람씩 자기 몫의 이야기를 꺼내놓기로 했습니다. 다음 자리는 8월 11일입니다.

연대)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2026.07.28

NCCK기후정의 아카데미&지역목회자 아카데미

"기후위기 시대, 교회는 어디에 설 것인가"

기후위기는 노동과 지역사회, 생태와 에너지 문제와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응답도 우리가 발 딛고 선 지역의 현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NCCK 기후정의위원회는 지역NCC와 함께 지역의 현안을 나누고 교회의 실천 과제를 찾아가는 지역 거점형 아카데미를 시작하며,
그 첫걸음을 인천NCC와 함께 내딛습니다.
강의로 기후정의의 신학적 의미를 살피고,
인천 영종도 갯벌 습지보호구역을 직접 찾아 지역의 생태 현장을 마주합니다.
이어지는 간담회에서는 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의제를 발굴하고 'NCCK 기후정의 10년 행동'으로 이어갈 길을 함께 찾습니다.

[1회차]온라인 강좌 (ZOOM)
📅 8/24(월) 오후 3시–6시
▪️ 송진순 박사 — 왜 교회가 기후정의 운동에 나서야 하는가
▪️ 정원진 목사 — 기후정의 10년 행동과 지역교회의 실천

[2회차]현장 워크숍
📅 8/31(월) 오후 3시–6시
📍 인천 영종도 갯벌 습지보호구역
🚩 손커피연구소 영종하늘도시점 앞 집결
▪️ 박주희 사무처장 — 갯벌이 들려주는 기후위기 이야기
▪️ 이택규 목사 (녹색교회네트워크 총무) - 기후정의를 위한 지역교회의 노력

🙋 회원교단 실무자, 지역NCC 관계자, 목회자·평신도 활동가
🏠 주최 NCCK 기후정의위원회 | 공동주관 인천NCC

📞 문의
NCCK 송기훈 간사 010-9111-8455
인천NCC 하성웅 목사 010-2803-0191

골목아키비스트 워크숍 2026.07.28

골목아키비스트 워크숍

지난 3개월, 「시민노동역사문학기행: 문장을 읽다, 골목을 잇다」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인천 동구의 골목을 함께 걷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경애의 『인간문제』, 현덕의 『남생이』, 양진채의『언제라도 앉아줄게』 — 인천 동구를 배경으로 한 문학의 자리를 직접 걸으며, 사라져가는 골목의 기억을 시민의 눈으로 기록해온 상반기였습니다.

무더운 여름 잠시 쉬워가며, 상반기 골목아키비스트, 함께 돌아보고자 합니다. 더불어 인천의 노동·문화·역사, 무엇을 어떻게 남길까 함께 고민해보고 아이디어를 모아보고자 합니다. 또한 10월 제물포 문학의 밤을 함께 기획하며, 프로그램의 의미있는 마무리를 구상하고자 합니다. 관심있고 시간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일시: 2026년 8월 15일(토) 오전 10시
대상 : 기획단, 참가자, 인천산선회원, 관심있는 모든 시민들 * 선착순 20명
장소: 깡시장 고객쉼터 '아모로' (인천시 부평구 부흥로 316번길 8, 2층)
주최: 사단법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 / 후원: 인천문화재단, 인천광역시청

연대)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2026.07.26

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 현장스케치

연대)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2026.07.26

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 _ 한반도 평화의 물결, 한강하구로부터

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7.23

후원금 및 회원회비 내역 2026년 06월

회원회비(CMS)
백승훈, 정은경(5,000) — 정은경 신규(6/25 첫 청구)
이세영, 이충현, 김도진, 나지현, 양진채, 박명숙(10,000)
박수희(20,000)
김정택(30,000)
정영옥(50,000)
성덕규(100,000)

회원회비(계좌이체)
손인수(10,000)

개인후원(CMS + 계좌이체)
원병철(10,000)
박상진(50,000원)
박연실(인간문제답사)(100,000원)
윤병철(6.20참가자)(50,000원)
정승원(20,000원)

단체후원
성암감리교회(100,000원)
미문교회(500,000원)
공덕감리교회(100,000원)

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7.23

후원금 및 회원회비 내역 2026년 05월

회원회비(CMS)
백승훈(5,000)
이세영, 이충현, 김도진, 나지현, 양진채, 박명숙(10,000)
박수희(20,000)
김정택(30,000)
정영옥(50,000)
성덕규(100,000)

회원회비(계좌이체)
손인수(10,000)

개인후원(CMS + 계좌이체)
원병철(10,000)
박상진(50,000원)
이종복떡방(50,000원)
전재범(10,000원)
권오무(50,000원)
박재민(50,000원)
정승원(20,000원)

단체후원
문수산성교회(50,000원)
성암감리교회(100,000원)
공덕감리교회(100,000원)
미문교회(500,000원)

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7.23

후원금 및 회원회비 내역 2026년 04월

회원회비(CMS)
백승훈(5,000)
이세영, 이충현, 김도진, 나지현, 양진채, 박명숙(10,000)
박수희(20,000)
김정택(30,000)
정영옥(50,000)
성덕규(100,000) — 신규(4/15 첫 청구)

회원회비(계좌이체) — 해당 없음

개인후원(CMS + 계좌이체)
원병철(10,000)
김인정(50,000원)
박상진(50,000원)
손인수(10,000원)
유안순(50,000원)
차미경(50,000원)
전재범(10,000원)
정승원(20,000원)

단체후원
인천NCC(100,000원), 인천혈액원지부(100,000원), 성암감리교회(100,000원), 공덕감리교회(100,000원)
미문의일꾼교회(500,000원)

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7.23

후원금 및 회원회비 내역 2026년 03월

회원회비(CMS)
백승훈(5,000)
이세영, 이충현, 김도진, 나지현, 양진채, 박명숙(10,000)
박수희(20,000)
김정택(30,000)
정영옥(50,000)

회원회비(계좌이체)
정우섭, 권금혜(50,000원)
민주노총인천지역본부(100,000원)

개인후원(CMS + 계좌이체)
원병철(10,000)
유안순(10,000원)
박상진(50,000원)
무명(100,000원)
전재범(10,000원)
정승원(20,000원) — 3/1, 3/27 두 차례

단체후원
인천지역연대(50,000원), 민주노총인천지역본부(100,000원),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50,000원)
문수산성교회(50,000원) — 3/12, 3/31 두 차례
성암감리교회(100,000원)
생명평화포럼(100,000원)
미문교회(500,000원)
인천민주화운동센터(100,000원)
공덕감리교회(100,000원)

2026년 자료아카이빙위원회 2026.07.21

인천산선 아카이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미팅

일시 : 7월 21일 화요일 오후 3시
장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가 : 김도진, 김희주, 나지현, 하성웅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아카이빙 준비위원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을 방문했습니다. 20여 년 전 기증했던 인천산선의 역사 자료들을 다시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어떻게 되살려 활용할지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재개발에 따른 이전과 노동문화역사기념관 건립 논의를 계기로, 인천산선은 오랜 시간 박스에 담겨 있던 1970년대 이래의 노동운동·도시산업선교 자료들을 다시 열어보고 있습니다. 건물보다 먼저 **콘텐츠**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이번 방문에서는 사업회에 디지털화되어 있는 자료를 인천산선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가장 큰 물음이었습니다. 문서 사료는 인천산선이 직접 생산한 기록이므로 아카이브 구축과 지역 교육·문화 사업에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을 확인했고, "우리 자료인데도 마음껏 쓸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오랜 고민이 풀렸습니다. 고화질 원문이 필요한 경우 공문 절차를 거쳐 순차적으로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인천산선은 단순히 자료를 모아두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지역 문화를 아우르는 자료들을 **누구나 쉽게 찾고 연구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기록을 만든 이들의 현장을 아는 손길로 자료를 정리하는 일 — 그 걸음을 이제 막 시작합니다.

연대)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2026.07.20

인천NCC 총회 스케치

연대)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2026.07.19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제2차 정기총회

일시 : 2026년 7월 19일(주일) 오후 4시
장소 : 효성중앙교회

에큐메니칼 세미나 <누가 전환의 짐을 지고 있는가?> 2026.07.14

에큐메니칼 세미나 '누가 전환의 짐을 지고 있는가? - 노동의 관점에서 본 정의로운 전환 -'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7-12

야행답사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7.12

시민X7월 양진채<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현장스케치 3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7.12

시민X7월 양진채<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현장스케치 2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7.12

시민X7월 양진채<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현장스케치 1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7-11

아는 만큼 사랑하게되는 우리 인천

《언제라도 안아줄게》저자 사인 받으려고 이번 답사팀에 하게 되었습니다
몇십 년 살았지만 처음 걷는 길 즐거웠습시다
절로 땀이 떨어지는 오늘 걷고 걸어 책에 등장하는 사건 장소 앞어서고 인물을 만났습니다 살고 사랑하고 갈등하고 연대하며 눈물과 땀 고통에도 희망을 꿈꾸는 그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고 또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7-11

2026년 자료아카이빙위원회 2026.07.09

자료아카이빙위원회 짜장학당 2차 모임

[자료아카이빙위원회 자장학당 2차 모임 후기]

오늘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자장학당 2차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학예사 출신이신 이천수 위원님이 새롭게 합류하시며 한층 더 든든해졌습니다! ✨

이번 모임의 가장 큰 수확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의 협력입니다. 사업회와 자료를 상호 공유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방대한 자료의 스캔 부담을 덜고, 본격적인 연구와 정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제 위원별로 전문 영역(DB 구축, 노동운동, 만석동 생활사, 문화운동 등)을 나누어 심층적인 아카이빙 작업에 속도를 냅니다.

다가오는 7월 21일(월)에는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을 방문해 세부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인천의 소중한 사회·노동 역사를 온전히 기록하고 보존하는 여정에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자장학당 #아카이빙 #인천역사 #기록유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6.26

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 와 함께하는 골목 Archivist 7월 야행길 코스

답사 코스 : 답동성당 – 신포시장 - 자유공원 – 동일방직 - 도시산업선교회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6.26

장편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는

1978년 동일방직에서 벌어진 ‘똥물 투척’ 사건을 배경으로, 시대의 폭력에 짓밟힌 여성 노동자들의 청춘을 복원하는 장편소설이다. 공장에 모여 자매처럼 지내던 미은·명숙·선자, 그리고 태오의 시선 속에 당시의 공포와 분노,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저자는 세월의 뒤편으로 밀려난 피해의 기억과 외면당한 목소리를 진혼의 형식으로 끌어올리며, 왜 아무도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는지 묻는다. 가난과 신앙, 연대와 싸움이 교차하는 이 서사는 시대의 기원을 다시 쓰는 문학적 시도이자 오늘의 독자에게 잊지 말아야 할 물음을 던진다.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6.26

1. 답동성당

1889년 7월 빌렘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를 맡아 인천지역 첫번째 본당인 제물포본당(답동본당의 원래 이름)을 설립하게 되는데, 일주일 후 임시 성당으로 마련한 가옥에서 84명(한국인 59명과 일본인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감격적인 첫 미사를 봉헌했다.
1893년 마라발 신부는 1895년 정초식을 갖고 본격적인 답동성전 건립은 공사에 들어가 이듬해 종탑이 완공되고 1897년 7월 4일 300평 규모로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전을 건립했다.
신자수가 늘자 1935년부터 성전의 외곽을 벽돌로 쌓아올리는 개축작업을 시작하여 2년 후인 1937년 성대한 축성식을 가졌다. 답동성당은 문화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사적 287호로 지정됐다.

신부님은 선서식 미사 마지막에 말했다.
“기도하며 노동하세요. 노동은 기도요, 작업장은 제단이에요. 노동은 그 자체로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수의 정신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해요. 지겨운 노동이 아니라 기쁨의 노동,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삶으로 인도하는 지오쎄 활동을 해나가야 해요. 우리는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갈릴리 호수를 정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웅덩이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데 물이 썩었으면 맑은 물로 옮기면 물고기가 살아요. 아예 웅덩이를 맑게 하면 앞으로 태어날 물고기까지 살리는 거예요.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돈만 중요해지고 노동이 천시되는 지금이 더 중요해요. 우리 노동자들도 정신적, 실천적으로 각성할 게 많아요. 하느님의 창조 사업의 협력자로 살아야 해요.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것을 더 좋게 하는 것이 노동자의 일이죠.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죠.”
신부님의 말씀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로 미은이 투사 선서를 했다.

종탑으로 올라가는 문에 열쇠를 꽂았다. 어제 류아저씨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열쇠를 건네주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 했다. 이제 온전히 태오가 종치는 일을 감당해야 했다. 나비장 열쇠와도 비슷하게 생긴 열쇠는 두 개의 홈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아직은 세상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문을 열고 갇혀 있던 적막을 온몸으로 느끼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거기, 굵은 밧줄이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태오는 홀로 깨어 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칠 빛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줄을 잡았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육중한 종이 거기 매달려 잠들어 있었다. 종은 도르레를 타고 내려온 밧줄과 연결되어 있었다. 도르레를 보면서도 태오는 줄이 저 먼먼 하늘 끝에서 내려온 듯했다. 종을 울리기 전 태오는 경건하게 마음을 모았다. 세상을 깨울 종을 쳐야 했다.

뎅, 뎅, 뎅.
“종소리 들었어?”
명숙이 갑자기 깜짝 놀란 듯 말했다. 종소리의 진원지를 찾겠다고 두리번거리더니 성당의 종탑을 발견했다.
“저기서 들리는 거구나.”
저기서 들리는 거구나. 명숙이 안도하듯 그렇게 말하고 조금 전까지 흥정하던 가게에서 조금 벗어나 조용히 종소리를 들었다. 네게 들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난 종소리가 이렇게 부드러운 줄 몰랐어.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해.”
조금 전 시장에서 산 순두부를 따뜻하다고 만지던 손을 가만히 배에다 대고 말했다.
“언니, 저 종소리는 하늘과 우리를 이어주는 시간 같은 거야. 지금 언니 마음에 저 종소리가 들렸다면 찰떡도 들었을 거야. 언니더러 더 기운내라고 저 종소리가 언니한테 들렸나봐.”
미은의 말에 명숙은 “괜히 눈물이 날 거 같애” 그러더니 정말 눈물을 글썽였다.
“나, 바본가 봐. 요즘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지?”
명숙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은이 있는 힘을 다해, 피를 토할 것처럼 말했다.
“태오야, 이 아이, 명숙 언니의 아이, 찰떡이의 마지막을 위해 종을 쳐줘. 태오야, 하느님이 계시는 거 맞아?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우리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거니. 우리가 그렇게 싸워도 도대체 아무도 몰라.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아. 아무도 우리말을 들어주지 않아. 우리 얘길 들어달라고, 같이 힘 좀 모아달라고 그렇게 외치고 다녀도 아무도 우리 얘길 들으려 하지 않아. 우리가 공순이라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너무하지 않아? 우리는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주면 안 돼? 조금의 관심,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정말 너무한 거 아냐!”
경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태오도 마찬가지였다. 하늘 아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느님이 계신 이 땅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은의 분노가 아니더라도 덜덜 떨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토록 참혹한 세계를 미은은, 아니 그녀들은 버티고 견딘 것인가.
“하느님이 있다면, 정말 하느님이 있다면 우리 소릴 들어야 해. 다 들어야 해. 모두 깨어서 다 들어야 해. 그래서 이 땅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보여줘야 해. 태오야, 안 그래?”
경준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경준이 무얼 할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에 알리는 것. 종을 쳐서 세상에 알리는 것. 태오의 눈빛이 미은의 절망 위에 겹쳐졌다.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제 계단을 밟았다. 경준이 뒤를 따랐다. 종을 친다면 그건 경준이 아니라 태오가 할 일이었다. 어떤 벌을 받게 될지 그건 다음 일이었다. 미은의 저 절규를 알려야 했다. 말하지 않았던가. 그녀들의 요구가 얼마나 작은 것이었는지, 그 작은 것을 얻으려 얼마나 온 힘을 다했는지.
태오가 밧줄을 잡았다. 경준이 옆의 밧줄을 잡았다.
“꽉 잡아, 힘을 뺄 때는 천천히, 절대 줄을 놓치면 안 돼.”
태오가 두 팔에 힘을 주고 밧줄을 잡아 당기며 온 힘을 싣는 것을 보고 경준도 따라서 몸을 실어 옆의 종을 쳤다. 뎅, 뎅, 뎅.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줄을 잡아당기고 또 잡아 당겼다. 더 크게 울리도록 치고 또 쳤다. 두 개의 종소리가 겹쳐지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면서 울렸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세상 사람들 귀에 다 들릴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이 참혹을 다 알 때까지 종을 치고 또 쳤다. 밧줄이 하느님의 음성이라도 되는 듯 붙들고 매달려 종을 쳤다. 이런 세계라고, 지금 우리가 따뜻한 아침밥을 지을 때, 누군가는 똥물을 맞아가며 싸우고 울부짖고 있다고, 이 세상 누구도 이 더럽고 추악한 세계를 눈 감으면 안 된다고 외치고 싶었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져 쓰라려 올 때까지 종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6.26

2. 자유공원

자유공원은 1888년 응봉산 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외국인 거류민단에서 관리·운영하여 당시 시민들은 이를 각국공원이라 불렀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서공원으로 바뀌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만국공원으로 불렸다. 6.25 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공원이름이 자유공원으로 개칭되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오 홍진 등이 주도한 한성정부가 자유공원에서 선포되었다.


연하디 연한 분홍빛이 가득했다. 바람이 불면 꽃잎들이 작은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날아다녔다. 눈앞에서 벚꽃을 보고 있어도 믿겨지지 않았다. 미은이 살던 동네에는 벚꽃이 없었다. 봄이구나, 눈부시게 예쁘다. 미은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간지러움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가 몰려가고, 다시 맴돌았다. 따뜻한 바람결, 날리는 꽃잎, 이렇게 봄을 느끼는 것이 호화로운 사치 같았다. 공짜로 누리는 사치였다. 이 봄을 느끼는 이 마음을 어떻게든 잡아두고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의 정체를 곱씹어 찾고 싶은데 일렁이기만 할뿐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벤치에 앉아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보며 졸음에 겨운 듯 눈을 희미하게 뜨고 이 봄을 즐기고 싶었다.
세상에!
미은의 눈길을 붙잡은 것은 고목 허리춤에서 뚫고 나온 잎 몇 가닥과 꽃송이였다. 새로운 가지가 몸통을 뚫고 나오면서 그 가지에 새 잎이 나고 꽃이 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절차 없이 바로 옆구리를 뚫고나온 저 잎과 꽃을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잎도 꽃도 모두 여리기만 한데 고목을 뚫다니.
“저 반란하는 꽃들을 봐. 대단하지 않니? 가만히 있으면 저 단단한 고목을 뚫을 수 없으니 반란을 일으켜 꽃을 피워내나 봐. 그러지 않으면 영영 저 자리에서 꽃을 피울 수 없을 테니.”
선자가 꽃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반란이란 말을 이렇게 연하디 연한 꽃에게 붙이다니.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은이 꽃 가까이 가보니 정말 반란이 아니고서야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고목을 뚫고 꽃을 피우긴 했다.

미은은 출근길에 만석우체국으로 가서 우편환으로 돈을 바꿔 시골로 보내고 자유공원에 올랐다. 아직 바람이 찼다. 공원 사진사가 노 장군 동상 앞에선 부부를 찍고 있었다. 여자의 볼이 빨갛게 얼었다. 그래도 사진사가 셔터를 누르기 전 마지막 숫자를 셀 때는 활짝 웃었다. 사진사 곁에는 동상을 배경으로 찍은 많은 사진이 판에 전시돼 있었다. 어느 공원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공원은 봄이 좋았다. 작년 봄에 벚꽃이 만개할 때 공원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비둘기들이 공원 광장에서 푸드득거리며 날았고, 벚꽃잎이 공원길마다 날렸고 떨어져 있었다. 공원에서 멀리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바다를 볼 때마다 시원했다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6.26

3. 동일방직과 여성노동자

동일방직은 1955년 서정익 창업주가 귀속재산 동양방적공사를 불하받아 세운 방직회사이다. 1965년 카톨릭노동청년회,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의 권리의식 교육을 받은 여성노동자들이 1972년 한국 최초로 주길자 씨를 여성 지부장으로 선출했다. 2대 이영숙 지부장 선출 뒤부터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976년 7월 지부장과 이총각 총무를 연행하자 단식농성을 시작, 기동경찰이 호송버스를 배치하고 몽둥이를 든 채 기숙사를 포위하자 노총가를 부르며 나체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여공들을 무차별 구타를 하고 70여 명 연행, 50명이 졸도, 70명이 부상14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한 여성 노동자는 이 사태의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1978년 2월 21일 대의원선거 하러 가는 여성노동자에게 똥물을 퍼붓고 폭행. 노조 투표함 40여 개를 파괴했다.
3월 10일 노동절 기념식에 숨어들어가 플래카드를 펼치고 전단을 살포, 3월 20일에는 원풍모방 등 노동자 30여 명과 함께 CBS 기독교방송 중단시키고 노동현실을 알리는 등 싸움이 처절해지자 각계 재야인사들이 '동일방직사건 긴급대책협의회'를 구성했다.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때는 단상에 올라가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순 없다!" 외치기도 했다. 사측은 노동자 124명을 해고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어디에도 취직을 못하게 했다. 2001년에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고. 최종선이 중앙정보부 재직 시절 동일방직 노조탄압이 중앙정보부와 연계돼 있다고 진술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정신적 손해배상 국가배상 판결받았다.
공장은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요란했고, 모두 여러 대의 기계를 맡아 보면서 정신없이 움직였다. 실이 끊어지면 재빠르게 이어줘야 해서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었다. 끊어진 실을 놓치면 그 실만 문제가 아니라 다른 목각에 감기던 실까지 엉키는 수가 있어 일이 커졌다. 퇴근 시간이 되면 귀가 멍멍했고, 다리가 부었다.
첫 출근하는 날, 작업복을 받아들 때, 어떻게든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리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을 잘해서 칭찬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일하는 것, 손발이 재바른 건 미은의 장점이었다. 공장 가득 솜먼지가 떠다녀 잠결에도 기침을 했다. 후덥지근한 공장 안에서 생리통이 심해 주저앉을 거 같아도, 축축한 운동화 속 발가락이 무좀에 진물이 나고 미치게 가려워도, 한밤중에 나와 다음날 아침까지 일을 해도 좋았다. 힘들었지만 좋았다. 언제 한 달이 돼 월급을 받나 싶다가도 또 어느새 한 달이 되기도 했다. 일한 대가가 한 달마다 월급으로 주어졌다. 힘들다고 그만 두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보였고, 어떻게든 공장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공장에서 미은은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였다. 노동자와 근로자.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를 모를 때, 노동자는 거친 느낌이었고, 근로자는 순한 인상이었다. 근로자라는 말이 더 부드러워 좋았다. 강사가 근로라는 말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 국민을 강제노역에 동원하면서 사용한 이름이 근로봉사대와 근로정신대라고 했다.
근로자는 사용자가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시키는 대로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고, 노동자는 인격을 존중하며 주체성을 가지고 서로 사용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일한 만큼 돈을 받고, 돈에 맞게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강사는, 우리는 근로자가 아니라 대놓고 언제 어디서든 노동자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나가야 한다고 힘을 주었다. 노동자라는 말이 힘이 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는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를 분명하게 아는 것에서부터 힘이 생기는 거라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기동경찰들이 연행버스까지 대기시켜 놓고 방망이를 들고는 농성장을 포위하기 시작하는 거야. 쿵쿵쿵 한 발 한 발 다가오는데 얼마나 무섭던지. 끌려가게 될까봐 다들 덜덜 떨었어. 그렇게 우리를 포위하고 달려오는데 우리는 꼭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거지. 어쩌면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제복을 입고 방망이를 든 경찰이 우리를 포위한 상황이 믿기지 않았어. 포위망이 좁혀 올수록 더욱 단단히 팔짱을 끼며 이를 악물었는데, 그래도 무섭고 이가 덜덜 떨리더라고. 한 여름이었는데 말이야. 꼼짝없이 붙잡혀 경찰버스에 실려 가게 생겼는데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어. 옷을 벗은 여자 몸에는 경찰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남자들은 손을 못 댄대! 아, 그 소리를 듣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있구나 싶더라고. 우리는 서로의 옷을 벗겨주었어. 필사적으로. 벗은 옷을 흔들며 공포에 차서 노래를 부르고. 수치심도 두려움도 없었어. 처음엔 경찰들도 놀라 주춤하더라고. 나중엔 주동자를 내놓으면 다들 무사히 귀가시켜 주겠다고 꼬시더라고 치사하게. 우스운 거 아니니? 이렇게 싸웠는데, 우릴 위해 앞장서서 싸우던 동료를 내놓으라니. 우릴 뭘로 보고. 우린 우리 모두가 주동자라고 소리쳤어. 그때부터 인정사정 보지 않고 무자비하게 끌고 가더라고. 하이고야. 어떻게든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경찰들이 방망이로 막 내려찍고 머리채를 잡아채 끌고 가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더라고. 연행 버스가 못 가도록 바퀴 밑으로 들어간 경자는 몽둥이로 얻어맞고 끌려나와 버스 안에 내팽개쳐지기도 했어. 우린 우리의 권리인 노조활동을 지키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렇게 되버렸어.”
선자의 긴 얘기를 믿을 수 없었다.
“언니, 정말 경찰이 우리가 옷을 벗었는데도 막 끌고 갔다는 거야? 그게 정말이었다구?”
명숙이 술이고 잠이고 다 깬 말간 얼굴로 물었다. 어두웠는데도 다 보였다.
“응, 지금도 상상이 안 되는데 가끔 꿈에서는 너무 선명하게 그 감정이 살아나. 그때는 놈들이 그 더러운 손으로 우악스럽게 잡아채고 끌고 가는데, 나중에 보니 양쪽 팔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더라고. 그게 멍이 아니라 그놈들의 더러운 눈빛 같아서 얼마나 씻고 또 씻었는지 몰라. 그해 여름엔 아무리 더워도 반팔을 입지 못했어. 멍이 지워진 뒤에도 그 팔을 햇빛에 보일 수가 없더라고. 그때 생각만 하면 치받혀 올라와서, 억울하게 치받혀 올라와서는 내 온몸을 조여.”
선자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명숙이 선자를 안았다.
“그 말을 듣는 우리도 이렇게 무서운데 그 자리에 있었던 언니들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미은도 울먹이며 선자를 안았다.

매일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시장에 가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장을 다 돌아보고서야 싸고 좋은 물건을 샀다. 때 되면 잘 익은 붉은 고추를 사서 길가 한 귀퉁이에 널어 말리기도 했고, 버려진 스티로폼박스가 아까워 상추모종이나 깻잎을 심기도 했다. 김장을 해서 혼자 사는 선자에게 몇 포기 가져다주기도 했다. 선자는 여성노동자 모임을 조직하고 거기서 일을 하거나, 지역의 노동 상담, 혹은 지원센터 같은 데서 오랫동안 일을 했고, 늘 바빴다. 그래도 공장 모임 하는 날엔 어떤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오십여 년이 흘렀다. 오십년이라니, 그 어렸던, 다정했던, 아름다웠던, 발랄했던 그 청춘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선자도 그렇지만 미은은 외롭게 싸우는 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려 했다. 경준과 같이 갈 때는 더 든든했다. 오랫동안 고공농성을 하는 동지들, 침몰한 배에 아이를 묻은 부모, 축제일에 압사당한 이의 가족, 또 산재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이의 가족. 어디든 갔다. 가서 피켓을 들든, 청소를 하고 밥을 하든, 구호를 외치든, 행진을 하든, 얘기를 나누든, 서서 있든 뭐든 했다. 온갖 악의적인 폭력에 맞서 오랫동안 싸워야 할 때, 그걸 온전히 그대로 맞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립되지 않게, 곁에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 누군가 옆에 있다고 그러니 쓰러지지 말라고, 부디 기운을 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건 미은을, 명숙을, 그 아이 찰떡을 위해 태오나 경준이 종을 쳐주었던 것과 같았다.

2026년 자료아카이빙위원회 2026.06.23

자료아카이빙위원회 짜장학당 1차 모임

오늘(6/23) 인천산선 지하 1층에서 노동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아카이빙 모임을 가졌습니다.

​✅ 주요 내용 및 결의

​재개발 및 노동 역사 관련 경과 보고 공유 ​
'Flat' 프로그램 활용하여 인천산선 자료를 PDF로 저장하는 작업을 시작.
추후 시간에는 각자 인천산선 자료와 관련하여 더 깊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 다음 모임 안내

​일시: 7월 9일(목) 오전 10시 ​장소: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지하 1층

​#인천산선 #노동역사박물관 #아카이빙 #기록의힘 #인천기록

시민X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2026.06.23

시민X7월 양진채<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22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많이 배웠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 곧 잊혀지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여러모양으로 아카이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 커졌습니다.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21

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스케치 3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21

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스케치 2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21

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스케치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21

인천에 78년도 이사와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한 자신을 깨우치게 한 일정입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유홍준관장님의 말씀이 진리이네요. 자본의 논리로 인천의 역사가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차별적으로 지워지는 아파트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면 무색무취의 인천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20

비오는 날에 김희주 소장님의 열정적인 강의 감사합니다.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20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읽고 김희주소장님 해설을 들으며 하는 답사 너무 유익하고 즐거운 탐방길 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정택 목사 출판기념회 "나의 아침이슬" 2026.06.18

출판기념회

김정택 목사님 출판기념회 스캐치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16

집결장소 안내입니다!

배다리 철교 아래(사진공간 배다리 앞) 6월 20일(토) 오전 10시에 만나겠습니다!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15

6월 20일 /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코스안내

1. 동인천역과 경인가도, 경동(외리)

2. 직업소개소와 공동숙박소

3. 답동성당

4. 긴담모퉁이길

5. 인천세관역사공원

*차량이동합니다.

6. 동일방직

7.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길 위의 간호사' 출판기념 북토크 2026.06.11

'길 위의 간호사' 출판기념 북토크 현장스케치

제2차 정기총회 2026.06.10

정기총회 스케치

현장의 소리 2026.06.10

베트남 이주노동자 故 뚜안 님 농성장 그리스도인 현장 방문

지난 10월 28일, 대구 성서공단에서 일하던 한 베트남 청년 이주노동자 故 뚜안 님은,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 합동단속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제단속 중심의 정부 정책으로 인해 이와 같은 구조적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밝히거나 공식적인 사과, 책임자 처벌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에 故 뚜안 님 아버지를 비롯한 연대인들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하며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비롯한 기독교사회선교 단위들 실무자들은 2025년 12월 12일 농성장에 방문하여, 상황에 대한 공유를 받고, 종교계로부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향후, 기자회견, 현장예배 등의 형태로 연대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현장의 소리 2026.06.10

한국옵티칼지회 Nitto Denko 고발 APEC 투쟁 연대기도회

지난 2025년 10월 29일(수) 경주에서 열린 한국옵티칼지회 Nitto Denko 고발 APEC 투쟁 연대기도회에 참여하였습니다.

APEC에 참여하는 국제지도자들과 기업들에게 외투기업의 먹튀행태를 고발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과 노동자의 인간적 대우를 요구하는 연대기도회였습니다.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니토덴코의 자회사로, LCD 편광필름을 생산하며 정부로부터 토지 무상임대와 세제 혜택 등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2022년 10월 대형 화재 이후 1,300억 원의 보험금을 받고도 공장을 재가동하지 않고 200여 명을 해고했습니다.

생산물량은 평택의 또 다른 자회사로 이전되었고, 구미 공장은 폐업되었으며 고용 승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2023년부터 평택공장으로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고, 2024년에는 박정혜·소현숙 동지가 불탄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소현숙 동지는 건강 문제로 내려왔지만, 박정혜 동지는 600일간 고공농성을 이어가다 2025년 8월 교섭 약속을 받고 내려왔습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회사는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용 승계를 거부했지만, 두 공장 간 인사 교류가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남은 7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경주 APEC 2025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투기업의 ‘먹튀’ 현실을 알리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일 연대발언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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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발언 공유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하성웅 목사입니다.

1960년 초에 세워진, 저희 인천산선은
가난한 도시민들과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위로하고, 민주노조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한국사회 노동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오늘 인천산선의 실무자로서 이 자리에 참여하게 되어, 벅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몇 마디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으니, 무거움 마음으로 연대의 말을 이어가겠습니다.



2022년, 구미의 한 공장이 불탔습니다.
지나보니 그날 사라진 건 공장의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1,300억원의 화재보험을 받은 회사는,
그 돈으로 다시 일터를 세운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내쫓았습니다.
희망퇴직이라는 말은 실은 절망퇴직이었습니다.
재난마저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용하는 비열한 작태였습니다.

17명의 노동자들이 잿더미 위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그 선언마져도 지워버리려 했습니다.
평택 니토 옵티칼 공장으로 모든 물량을 옮기면서도, 고용승계는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법인이 다르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버렸습니다.
오늘날 자본이 생명을 다루는 잔인한 방식입니다.

두 노동자가 결단했습니다.
박정혜, 소현숙 동지.
땅 위에 문이 닫히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불탄 옥상에서, 600일, 467일,
비와 바람을 맞으며 버텼습니다.
생명이 자본에 어떻게 저항하는지,
존엄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온몸으로 또렷이 보여주었습니다.

쉽사리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싸움은 단지 고용의 문제 아니라,
자본에 의해, 인간이 어디까지 밀려날 수 있는가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불탄 옥상은
그저 지방 한 도시의 폐허가 된 공장의 흔적이 아니라,
사람을 벌거벗긴채 내버려두는
잔인한 우리사회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자본이 인간을 숫자로 가늠하고, 제멋대로 삭제하는 비인간성의 문턱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저는 고백합니다.
인간을 숫자로 가늠하는 그 자리에,
자본이 인간의 삶을 지워버리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머문신다고 말입니다.
세상이 취하는 자들은 버리시지만,
세상이 버린자들을 취하시는 하나님,
바로 제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옵티칼지회 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입니다.
회사의 침묵을 씻을 수 없는 죄라고 외칠 것입니다.
정부의 무관심을 공범이라 칭할 것입니다.
외투기업의 먹튀를 탐욕으로 정죄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숭고한 노동을 단지 '쓸모'로만 계산하는 이 시대의 질병을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완악한 자본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으며,
승리의 날까지 끝까지 연대할 것을 굳게 다짐하며, 연대발언을 마칩니다. 투쟁!

2026년 자료아카이빙위원회 2026.06.10

짜장학당 준비모임

2026년 자료아카이빙위원회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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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X노동역사문학기행: 골목카이비스트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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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5월 남생이길 스케치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13 호두형 포구

‘호두항으로 조그만 항구 한쪽 끝을 향해 머리를 들고 앉은 언덕, 그 서남면 일대는 물매가 밋밋한 비탈을 감아 내리며, 거적문 토담집이 악착스럽게 닥지닥지 붙었다. 거의 방 하나에 부엌이 한 칸, 마당이랄 것이 곧 길이 되고 대문이자 방문이다. 개미집 같은 길이 이리 굽고 저리 굽은 군데군데 꺼먼 잿더미가 쌓이고, 무시로 매캐한 가루를 날린다. 깨어진 사기 요강이 굴러 있는 토담 양지짝에 누더기가 널려 한종일 퍼덕인다.’

‘비탈을 찍어 판 손바닥만한 붉은 마당에 오지항아리 몇 개가 섰고, 구기자나무 그림자가 짙은 한편은 볕이 당양하다.’

‘선창벌이가 좋아. 하루 이삼원 벌이는 예사고 저만 부지런하면 아이들 학교 공부시키고 땅 섬지기 장만한 사람도 적지 않다.’

‘선창에 나가 소금을 져 나를 때도 그렇다. 이백근 등이 비수거리를 짊어지고 도급으로 맡은 제 시간 안에 대느라고 좁다란 발판 위를 홑몸처럼 달음질치는 일을 닷새 이상을 붙박이로 계속하면 장사 소리를 듣는다는 고역을 노마 아버지는 남우세 없이 꿋꿋이 배겨냈다.’

‘집과는 반대로 언덕 저편 뒤 사정(射亭) 있는 편으로 향해 길을 더듬는다.’

그 아버지가 묵연히 내려다보는 컴컴한 바다 저편에는 이따끔씩 끔뻑일 뿐 밤은 괴괴하다.‘

‘오냐 두 달만 참아라.’ ‘몸이 추스는 대로 나두 하던 일을 계속 하겠구, 하루 천이 되든 이천이 되든 붙이는 대로 쓰지 않구 모으면 새끼 꼬는 기계 한 틀 쯤은 장마할 밑천은 모일게구, 그것 한 틀만 가졌으면 앉어서두 아내가 하는 하루벌이는 나두 능히 벌 수 있겠구, 오냐 두 달만 참어라.’

‘해가 저물면 아침에 나갔던 사람들이 각기 제 나름대로 컴컴한 얼굴로 돌아오고 이 집 저집 풀떡풀떡 풀무질하는 소리와 매캐한 왕겨 때는 연기가 온 동네를 서린다.’

‘모두 선창에 나가 영이 할머니는 낙정미를 쓰러 모으는 쓰레기꾼, 노마 어머니는 잔술을 파는 들병장수, 일터를 같은 마당에 가진 탓으로 듣는 억울한 소리다.’

‘잿더미가 쌓인 토담 모퉁이 양버들나무는 노마의 아름으로 하나 꼭 찼다. 노마는 두 손에 침을 바르고 단단히 나무통을 안는다. 두어 자 올라갔다가는 주르르 미끄러져 내린다.’

‘이 고비를 넘기기만 하면 금방 거기는 선창이 있고, 활동사진이 있고, 돈이 있고, 그리고 능히 어른의 세계에 한몫 들 수 있는 딴 세상이 있다. 그때에 노마는 자기 아니라도 족히 아버지를 모시고 잘 살 수 있는 노마임을 여보란듯이 어머니에게 보여 줄 수 있으련만 아아!’

‘시커먼 화물차가 한참 지나가고 훤하게 앞이 열리자, 건너편 일대는 전부 볏섬이 더미 더미 산을 이루었다. 말 구루마 소 구루마가 길이 미어 나온다. 볏섬 사잇길을 왼편으로 꺾어 나가면 바다, 제2 잔교서부터 제3 잔교 일폭은 크고 작은 목선이 몸을 비빌 틈이 없이 들이찼다. 꾸벅꾸벅 고개를 빼고 볏섬을 져 나르는 자, 섬에다 삭대를 찔렀다 빼며 ’다마금요, 은방요‘ 허청대고 외치는 자, 뒷짐을 지고 서서 두리번거리는 모직 두루마기를 입은 자, 그리고 지게를 벗어 놓고 볏 섬 위에 혹은 가슬에 무더기 무더기 입을 벌리고 앉았는 자, 그들의 무심한 눈은 거의 한곳으로 모인다. 가운데 무럭무럭 오르는 더운 김과 시큼한 냄새를 휩쓸고 섰는 한 덩어리가 있다. 각기 젓가락과 사발을 들고 고개를 쳐들어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쩍쩍거린다. 바가지는 그들 사이를 뻐기며 소리친다.’

‘그편을 멀찍이 등지고 돌아서, 그러나 어머니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리를 두고 노마는 뒷짐을 지고 섰다. 제이 잔교 위 엿목판 옆이다.’

‘너무 잔잔해 유리 같은 바다다. 놀라움밖에 표현할 줄 모를 커다란 기선이 떠 있다. 가난한 사람처럼 해변 쪽으로는 목선이 겹겹이 모여서 떠돈다. 잔교 한편에 여객선이 붙어 서서 사람과 짐을 모여 들인다. 통통통 고리 진 연기를 뽑으며 발동선이 우편으로 물살을 가르며 달아난다. 저 배가 보이지 않거든 노마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리라 한다. 마침내 발동선은 시커먼 중국 배 뒤로 사라진다. 그러나 어쩐지 미진해 다시 이번에는 여객선이 사람을 다 태우고 움직이기 시작하거든 하고 노마는 자리를 뜨지 못한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배가 움직이기 전에 어머니는 왔다. 그러나 건너편 세관 앞을 오면서부터 눈을 흘기며 “뭣 허러 까질러 다니니, 배라먹게.”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12 송월동 변전소

주소 : 인천 중구 제물량로335번길 11 (북성동1가 1-2)
화평운교에서 외국인묘지까지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11 송월시장

현재의 만석고가교(인도교) 옆에 1937년 2월 설립된 가축시장이다. 질퍽한 부지에 특별한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말을 키우던 곳이라 하여 흔히 말깐(말간) 또는 ‘돼지장터’라 불렀다. 광복 후 만석동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이 이용해 한때는 꽤 번창했던 시장이었으나 철도 건널목이 담으로 막히면서 만석동과 단절이 되면서 상권이 급속히 위축되었다.

‘그러나 노마 저는 모르지만, 여기엔 자기네답지 않게 어머니만이 인조견이나 무늬있는 비단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며 선창에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는 것에 대한 반감과 샘이 크다. 어머니는 이른바 ’항구의 들병장수‘다.’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10 동일방직

그림 수도국산 박물관 레트로 블로그에서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청 산하의 동양방적 공사에 흡수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면방업은 호황을 맞이했고, 1955년 8월 5일 서정익이 동양방직 주식회사를 세워 동양방적 공사를 인수했다.

인천에 위치한 동일방직은 솜에서 실을 뽑아 화학섬유를 만들던 곳이었다. 공장에서는 총 23개의 부서가 있었으며 총 1,400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실을 감는 장방부서와 실을 짜는 직포과에서 근무했다. 다른 공장들보다 보수가 좋았고 식사와 기숙사를 제공했기에 여성 노동자들이 선망하던 곳이었다.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9 다카스키 양조장 터

‘하기는 노마 어머니가 처음 쓰레기꾼으로 마당엘 나오자, 영이 할머니는 은근히 반기었다. 그는 인물보다 맨드리가 쓰레기꾼 축에 섞이기는 아까웠다. 번히 쓰레기꾼이란 정작 볏섬도 산으로 쌓이고 낙정미도 많이 흘려있는 지대조합 구역 내에는 얼씬도 못하고, 목책 밖에 지켜 섰다가 벼를 실고 나오는 마차가 흘리고 가는 나락을 쓸어 모은다. 그러나 기실은 구루마 바닥에 흘려있는 나락을 쓸어 담는 척하고 볏섬에 손가락을 박고 치마 앞자락에 후비어 내는 것을 본직으로 꼽는다. 그러다 들키면 욕바가지를 들씌운다. 쓰레받기 몽당비를 빼앗긴다. 앙가슴은 떠다박질리고 채찍으로 얻어맞는다. 그러나 마차 뒤에 달라붙은 여인들을 향해 채찍을 든 마차꾼도 노마 어머니를 대하고는 그대로 멈춘다. 머리에 숙여 쓴 수건 아래 수태를 품고 고개를 숙인 미목이 들어앉은 아낙네가 노상봉변을 당한 때 싶다. 마차꾼은 금세 언성이 슥는다. 욕이 농으로 변한다. “아제 내 이것 가져다가 돌절구에 콩콩 빻아 가는 체로 받쳐서 대추 박아 꿀떡 해놀테니 부디 잡수로 오슈.”하고 마차꾼 뒤로 실리는 등판을 떠다민다. 그 틈에 나머지 여인들은 볏섬에 달라붙어 오붓이 갉아 모은다.’

* 인천 동구 만석동 일대 (정미소 인접 구역)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8 정미소 터(사이토 아리마정미소)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7 나무와 샘

* 인천 동구 석수로 30 (화수동 287-6)

‘나도 생각이 있다 싶은 노마 아버지의 호기 찬 소리는 별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랫집 춘삼이네를 통해 성냥갑 붙이는 재료를 얻어왔다. 그집은 아들이 조합에 든 인부여서 밥을 굶는 형편은 아니나 늙은이 양주가 심심소일로 성냥갑을 붙여 살림에 보탠다. 그러면 혹은 대 끝에 올라 여기다 목숨을 걸고 바재면 아니 될 것 같지도 않다. 하기야 하루 만개 가까이만 붙였으면 공전이 일원 오십전, 그만하면 우선 급한 욕은 면하겠고 그리고 노마 어미에게 할 말도 하겠고, 하루 만 개!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이니 인력으로 아니 되란 법도 없으리라. 오냐 만 개만 붙여라.’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6 성냥공장 흔적

* 인천 동구 운교로13번길 6 (화수동 287-87)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성냥제조회사로 연간 2,00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설비를 보유했던 조선인촌은 광복과 함께 미군정청 귀속 이후 적산기업으로 불하되었으나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조선성냥은 점점 와해되었습니다. 그 즈음 화수동 287번지 현재의 화수시장 위치에 석모도 출신 이승묵이라는 사람이 ‘조선성냥’의 생산설비를 사들여 1948년 ‘대한성냥공업주식회사’를 열었습니다. 성냥의 주원료인 염소산칼륨의 수입 통로 였던 인천은 다른 지역보다 원료 획득이 유리했습니다. 이승목은 많은 양의 염소산칼륨을 공장 부지에 저장해두었고 6·25전쟁에도 공장건물은 폭격을 피해 성냥산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천은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성냥 제조 인력이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공장 주변은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고 한 집 건너 한 집이 성냥갑을 접고 라벨을 붙이는 부업에 뛰어들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대한성냥 공장은 1950년대 2천평의 부지, 550평의 공장에서 250명의 직원이 매일 80만 갑의 성냥을 생산하며 인천은 또 다시 성냥 제조업의 중심 도시가 되었습니다.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5 화평운교

구름다리 아래를 지나는 경인선 열차

1899년 7월 17일자 <독립신문>에는 인천전환국(옛 인천여고 자리) 옆의 산을 파헤치는 작업중 흙더미가 무너져 인부 4명이 사망하고 1명이 상하는 기사가 났다. 경인철도 공사 중이리라 짐작은 하는데 이때 화평운교가 놓여졌을 것이다. 나무다리에 검게 칠을 해서 흑교라고도 불리었는데 증기기관차가 경인선을 달리면 ‘칙칙폭폭’ 기관소리와 함께 하얀 수증기를 뿜었다. 다리 위에는 조선인들이 하얀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지나가면 구름 위의 신선 같다고 하여 ‘운교 구름다리’라고 불리었다 한다.

이 다리가 놓이면서 당시 한국인 동네였던 화평, 화수동 주민들은 이 구름다리를 지나 홍예문을 통해 도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해마다 가을이면 일본인 축제 행렬이 지나갔다고 하는데, 인천신사(지금의 인천여상)에서 출발한 일본인들의 신여 '미꼬시'를 앞세운 소위 왓쇼이가 구름다리를 건너갔는데 인근의 사람들에게는 희한한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4 화평동 냉면골목

주소 : 인천 동구 송화로2번길 2 (화평동 536)
동구에는 일찍이 일제가 설립한 공장이 즐비했다. 조선 기계 제작소, 정미소, 성냥 공장, 대규모 기숙사 등이 수두룩했다. 이는 광복 후 1990년대 초까지 한국기계공업, 일진전기, 두산중공업, 현대제철, 동일방직 등 굵직한 기업으로 이어졌다.

화도고개와 화평운교, 화수부두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옥과 상권이 자리하며 화수·화평동은 이들 공장을 위한 배후 주거 마을로 자리를 잡았다. 일자리를 찾아 흘러 들어온 이들이 함께 모여 살며 북적거렸고, 고된 생활에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동인천역 인근 ‘화평동 냉면 거리’의 역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먹성 좋은 노동자들은 사리를 추가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철길 아래서 처음 냉면집을 시작한 ‘아저씨냉면’ 1대 사장 김용만(71) 씨가 아예 지름이 30cm에 가까운 큰 그릇을 개발해 푸짐하게 담아냈다. 화평동의 ‘세숫대야 냉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1990년대 초 인천역∼주안역의 경인전철 복복선 확장 공사로 골목 한쪽이 헐려 냉면집이 열두 곳만 남은 뒤에도 호황은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왔고, 좁은 골목에 차량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일미화평동냉면’ 홍경애(69) 사장은 28년째 매일 육수를 낸다 양념도 손님들 입맛에 맞게 연구를 거듭했다. 채소와 과일을 우려내 담담한 국물, 송송 썰어 듬뿍 올린 채소와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이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올여름에도 방송국에서 나와 촬영을 했어요. 전국에서 알아주잖아요. 자부심을 갖고 화평동 냉면 거리의 명맥을 이어야죠.” 세월 따라 풍경은 변했지만 상인들의 굳은 심지는 여전하다. (굿모닝 인천)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3 함세덕생가터

* 인천 동구 송화로7번길 2-1 (화평동 455-4)

함세덕은 인천 출신의 극작가이다. 함세덕의 출생주소는 ‘화평동 455번지’, 제적 주소는 ‘경기도 인천부 용리 177번지’이다. 제적에는 본관이 양근(楊根) 으로 기록되어 있다. 증조는 의영(義榮), 조부는 선지(善志), 부친은 근욱(根彧)이다. 제적등본에 의하면 함선지는 개국 457년생(1850)으로 의영의 장남이며 17세에 부친의 사망으로 호주가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부 함선지는 객주업 등에 종사하였다. 개항 무렵 조선인 객주 여각 등은 객주회 등을 조직하여 외국상인자본의 유입에 대응하는데 그때 조직된 인천객주회의 후신 ‘인천신상협회(仁川紳商協會)(1899년 기록)에 함선지가 임원으로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함선지가 오십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상인으로 대성하였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재력을 배경으로 부친 함근욱은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인천지교(현 인천고등학교의 전신, 관립인천일어학교, 인천공립상업학교로의 개편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름)를 졸업하고, 그 후 ‘외국어학교’의 부교관으로 재직하였고, 나주군청 주사가 되어 근무하다가 함세덕이 태어나던 해, 목포부청으로 발령이 나자 목포로 이주하였다. 함세덕은 출생 후 목포로 내려가 1923년까지 거주한다. 이 때문에 ‘함세덕이 목포에서 출생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2 현덕 작가의 집

* 인천 동구 화도진로68번길 15 (화평동 78)

작가 현덕(玄德. 1909~?. 본명 현경윤)의 남생이는 인천항 주변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도시 빈민의 삶을 어린아이 ‘노마’의 시선으로 포착한 단편 소설이다. 현덕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중의 하나다. 소설 ‘남생이’는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후 현덕은 소설, 동화, 수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그는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출판부장을 맡기도 했으며, 1950년 월북했다. ‘남생이’는 1930년대 후반 인천항과 그 주변 빈민촌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싸리전 거리, 등대, 기차, 윤선, 세관, 수상경찰서, 칠통마당 등 공간적 배경이 인천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말들이 나온다. 낙정미를 줍는 여성, 엿목판을 들고 장사하는 사람 등 노마 가족과 주변 인물의 생황 상에서도 인천 부둣가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노마 가족은 항구 주변 언덕의 빈민촌에 살았는데, 이곳은 지금의 중구 도원동으로 추정된다. 현덕은 ‘남생이’를 집필할 당시 인천에서 살았다. 작가 현덕과 소설 ‘남생이’는 당시 문인들로부터 ‘우리 조선문학을 송두리째 톡톡 털어놓아도 그 중 ‘남생이’ 일편이 우리의 전 문학적 수준을 대표할 만한 작품(언희남), ‘이러한 이가 이제껏 문단에 나오지 않고 그해 평가들은 부질없이 문단이 침체하였으니 어쨌느니 그랫을 것인가’(박태원) 등의 극찬을 받았다. ‘남생이’ 뿐 아니라 다른 동화 작품에도 ‘노마’라는 어린아이가 등장하는데, 이 이름은 ‘이놈아’‘저놈아’에서 땄다고 한다.

인하대 원종찬(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소설 남생이는 1930년대 후반 인천항 부두 하층민의 삶을 노마의 눈으로 아주 예리하게 포착한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원종찬 교수는 현덕 연구 권위자이다. 원 교수는 소설 남생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농민과 자유노동자라는 역사성을 천진한 어린아이 눈으로 포착했다”며“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했다. 또 “어머니는 타락하고 아버지는 숨지는 등 부모가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했는데, 노마는 성장한다”며 이것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균형점”이라고 했다. 그는 “노마의 독특한 시선이 읽는 재미도 있지만, 미학적으로도 중요하다”며“민중의 삶의 조건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30년대 후반기 리얼리즘에 도달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노마의 시선이라는 방법적인 고민을 모던이라고 한다면, 민중의 현실을 주목하는 작가의 시선은 리얼리즘”이라며 리얼과 모던이 합류하는 30년대 후반기 문학의 전향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원 교수는 “현덕은 인천에서 잊을 수 없는, 인천에서 매우 중요한 점을 찍은 작가임은 분명하다”며“인천의 생태를 그린 남생이로 문학사에서 중요한 성과를 냈다”고 했다.

현덕(1909~)은 우리나라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최근 ‘남생이’, ‘경칩’ 등의 소설을 집필했던 현덕의 집(화평동 78번지)이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현덕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인천과 가까운 대부도 당숙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숙의 집안이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용강정이라 불리우던 곳으로 이주하여 소년 ‘노마’가 등장하는 여러 편의 소설을 창작했다.

1938년 조선일보에 ‘남생이’로 등단한 현덕은 소설가로도 주목되지만 소년 ‘노마’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아동문학 장르에서 현덕의 자리는 매우 크다. 다소 늦게 그의 동화작품들이 발굴 소개됐으나 ‘노마’가 없는 우리 아동문학은 상상하기 힘들다.

시민X5월 기행 현덕〈남생이〉길 2026.06.10

코스1 동인천역 북광장

수문통

나라를 빼앗기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농지마저도 빼앗긴 조선의 백성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각지에서 몰려든 곳이 수문통을 중심으로 하는 배다리였다.

인천에서 자리를 잡은 이들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재빨리 사라졌기에 몰래 장사를 한다고 하여 야매시장, 도깨비시장으로 불렸다. 이러한 전통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을 몰래 내다 파는 양키시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도깨비 시장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도깨비시장이었다. 이 당시의 배다리는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번창했던 곳이었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삶을 개척해 온 사람과 시장의 형성이 문학인들을 키워냈고, 문학을 토양으로 하는 서민들의 문화에의 욕구가 많은 영화관들이 들어설 수 있는 무대가 되어서 여기서 나고 자라온 지금의 20대, 30대, 40대, 50 등 각 세대에 나름의 추억을 만들어 내었다.

‘멀뚱멀뚱 얼굴만 서로 바라보다가, 털보는 문득 “요새 군밤 좋더라. 너 좀 사오겠니.” “어디 국숫집 앞 말이지.” “싸리전 거리 구둣방 앞 말야. 거기 밤이 크고 많더라.”하고 어머니가 가로챈다. 거기는 길도 서투르고 또 밤이 무섭다. 그리고 노마는 거기 말고도 근처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을 먼 데를 가야하나 하는 불평도 있다.’

‘꿈에 가위눌리는 때처럼 밤길은 뒤에서 무언가 쫒아 오는 것만 같다. 걸음을 빨리 노면 놀수록 오금이 붙고, 개천에 하방이 빠질까 꺼먼 데면 모두 건너뛰는 우물 앞 골목길이 더욱 그렇다. 골목을 빠지면 큰길, 거기서부터는 가리킨대로 오른편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급기야 구둣방 앞에서 굽는 밤은 도리어 잘다. 몇 번이고 지나 놓고 온 것이 굵고 많을성 싶다. 노마는 다시 그런 놈을 찾으러 다닌다. 돌아오는 길은 정말 무서운 밤이 된다. 컴컴한 골목에서 밝은 거리로 너올 때보다 밝은 데를 버리고 컴컴한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무서움이란 유별하다. 노마는 우물 앞 골목을 들어서 눈감은 개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가만가만 발자취를 죽인다.”

항도극장

송현동 일대의 매립으로 수문통이 만들어지고 매립지가 공장지대로 개발되면서 노동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도깨비 시장이라 불리우는 노점상들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시장이 형성된 것을 배경으로 항도극장이 들어섰으나 그다지 기억 속에 남을 만한 역사는 갖지 못하였다.

수문통 일대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이다. 고일선생의 ‘인천석금’에 따르면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들이 중구 전동 근처에 주둔하면서 그곳 주민들을 송현동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이들은 수도국산 기슭에 터를 잡고 생활했으며, 이곳에서 흘러나온 생활폐수로 수문통 일대가 오염되었고, 바닷물이 자주 넘쳐 갈대밭으로 변했다. 이러한 수문통을 일본인 요시다(吉田秀次郞)가 매립하였다. 이 공사는 1939년에 착공하여 1943년에 완공된 것으로 33,325평이 매립되었다. 수문통시장은 현재의 수문통 길에 개설되었던 시장으로 현재의 화평파출소에서 구 적십자 병원자리까지에 이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2026.06.10

시민X6월 강경애 <인간문제>의 길

어느여성노동자의길 2026.06.09

어느여성노동자의길 11월모임사진

어느여성노동자의길 2026.06.09

어느여성노동자의길 10월모임사진

어느여성노동자의길 2026.06.09

어느여성노동자의길 9월모임사진

“민주주의, 다시 봄” 조지 오글 목사 5주기 추모예배 2026.06.09

조지오글 목사 5주기 추모 및 도로시오글 선교사 별세 추모 기도회

https://www.youtube.com/watch?v=WP4wYCwpyKA

“민주주의, 다시 봄” 조지 오글 목사 5주기 추모예배 2026.06.09

조지 오글 목사 5주기 추모예배 스케치

“민주주의, 다시 봄” 조지 오글 목사 5주기 추모예배 2026.06.09

도로시 오글 선교사님 소천

한국민주주의 친구 조지 오글 목사의 부인 도로시 오글 선교사님의 소천소식을 전합니다.

2025년 10월 30일 도로시 오글(Dorothy Ogle) 선교사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떠날 때 캐시, 카렌, 크리스, 그리고 카렌의 딸 마야가 함께 있었으며, 마틴은 그 직후 도착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그동안 울혈성 심부전으로 인해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왔습니다.
장례식은 11월 15일 오후 2시(미국산악지역시간)에 열릴 예정입니다. 추후 생중계/녹화 링크를 제공 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는 11월 15일(토) 오전 11시 조지 오글 목사 추모예배 시에, 도로시 오글 선교사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슬픔과 변화의 이 시기에 도로시의 가족 모두를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천산선 창립 1주년 기념 토론회 2026.06.09

인천산선 창립 1주년 기념 토론회 스케치

인천산선 창립 1주년 기념 토론회 2026.06.09

인천산선 창립 1주년 기념 토론회

제2차 정기총회 2026.06.09

사단법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제2차 정기총회 공고

전태일 55주기 기념예배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2026.06.09

전태일 55주기 기념예배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길 위의 간호사' 출판기념 북토크 2026.06.09

'길 위의 간호사' 출판기념 북토크

전시회: <155cm> 2026.06.09

전시회: <155cm>

조화순 목사님 92번째 생신기념 차담회 2026.06.09

조화순 목사님 92번째 생신기념 차담회 스케츠

조화순 목사님 92번째 생신기념 차담회 2026.06.09

조화순 목사님 92번째 생신기념 차담회

김정택 목사 출판기념회 "나의 아침이슬" 2026.06.09

김정택 목사 출판기념회 "나의 아침이슬"

시민X노동역사문학기행: 골목카이비스트 2026.06.09

골목아키비스트 내용

대상: 지역 주민, 활동가, 문학 전공자 등
역할: 프로그램 공동기획 진행
문의: 010-2803-0191 (하성웅 사무처장)

기행 주제와 코스
5월: 현덕 〈남생이〉 길
6월: 강경애 〈인간문제〉 길
7월: 양진채 〈언제라도 안아줄게〉 길
8월: 조세희 〈난쏘공〉 길
9월: 김중미 〈괭이부리마을〉 길

기행 방식
지도에 있는 QR코드로 디지털 아카이브에 접속하여 현장에서 느낀 점, 사진, 음성 메시지를 남깁니다. 이 기록들이 모여 차후 기행록의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갈무리 토크콘서트

제물포 노동문학의 밤〉
8개월간의 성과를 영상으로 공유하고, 입체 낭독극과 토크 콘서트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확산합니다.

시민X노동역사문학기행: 골목카이비스트 2026.06.09

사라져가는 東區의 골목, 시민의 문장으로 다시 잇다

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6.09

후원금 및 회원회비 내역 2026년 02월

회원회비(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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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양진채 김도진 이충현 나지현(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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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교회(100,000원), 공덕감리교회(100,000원), 미문교회(500,000원), 미문교회(500,000원)

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6.09

후원금 및 회원회비 내역 202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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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5,000)
하성웅 박명숙 양진채(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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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경 (1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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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병철 유안순(10,000)
정승원(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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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감리교회 (100,000원), 공덕감리교회 (100,000원), 문수산성교회 (50,000원)

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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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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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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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5,000)
하성웅 박명숙(10,000)
박수희(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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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병철(10,000)
조지오글 추모예배 후원(2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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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후원보고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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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여성노동자의길 2026.06.08

어느여성노동자의길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